::::: 경찰 간부후보생 제도 신설 :::::
>> 1947년 09월 01일
>> 신임 경찰간부 채용제도
 

간부후보생제도는 일반인으로부터 간부후보생을 공개경쟁시험에 의거 모집하여 비교적 장기간의 교육을 실시한 다음 경위에 임명하여 일선근무에 배치하는 신임경찰간부 채용제도였다.

이 제도가 창설된 동기는 첫째, 간부급의 결원보충을 지적 수준이 높은 일반인에서 모집함으로써 경찰지도층의 질적향상을 기하는 데 있었다. 이것은 초창기의 순경급 모집실태가 비교적 저조하고 질이 낮은데 그 근본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말하자면 간부라는 직위상의 매력으로 질적수준이 높은 사회인사를 경찰내부에 유치하려는 제도상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 간부후보생 1기생 조회광경(1948) > < 간부후보생 1기생 행진훈련(1948) >

둘째는, 참신한 신진간부를 기용함으로써 식민지 경찰의 잔재를 불식하고 경찰의 민주화를 실현하자는 데 있었다. 초창기의 국립경찰은 그 인적구성 내용에 있어 실무를 직접 담당하는 중견간부급은 거의가 일제시의 한인 경찰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구직 경찰관들의 손에 의해서 처리되는 경우가 허다하여 참신한 청년간부를 모집하여 민주이념을 교육시켜 일선에 배치함으로써 민주경찰행정을 실현코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간부후보생제도는 1947년 9월30일 93명의 1기생을 모집하여 교육함으로써 그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6 25전쟁을 전후한 당시의 경찰전문학교 교육은 비간부의 신규임용 또는 재교육을 담당하던 보통과와 간부후보생을 교육하던 본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본과는 다시 일반인을 모집대상으로 하는 1부와 경사,순경급에서 모집하던 2부로 되어 있었고 경위급 재교육을 담당하는 본과 3부와 경감급 재교육을 담당하는 4부가 있어, 재교육 및 신규교육을 통합하여 담당하였고,

이후 1961년 지방경찰학교가 부활될 때까지 유일한 경찰 교육기관이었다. 당시 본과 1부의 교육기간은 10-12개월이었고,본과 2부는 6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간부후보생제도가 신설되던 당시의 상황은 제주도의 5.3폭동,여순반란사건 등이 발생하는 등 좌우익의 대립이 심각하던 때였다. 당시 간부후보 1,2기생들은 이러한 폭동진압에도 투입되어 커다란 전공을 세웠다. 6.25전쟁 당시에도 간부후보생교육은 계속 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11월부터 4년간 모집이 중단되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대대적인 감원문제로 인하여 간부후보생 모집도 중단된 것이다. 1957년도에 비로소 간부후보생 9,10기생을 모집함으로써 제도가 재개되었고 1958년(11기)부터는 학력수준이 대졸이상인 고급인력을 모집하였다. 또한 1974년(22기)이후 졸업하는 간부후보생에 대하여 순환보직제를 실시하였는데, 그 배경으로는 순환보직 관리를 통하여 최하급 경찰관의 기초적인 직무지식 및 경험을 체계있게 고루 습득함으로써 경찰 고급간부로 육성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배치 및 보직지침은 직무를 차질없이 수행하면서 효과적으로 실무를 습득할 수 있도록 업무량이 적정한 경찰서에 1명씩 배치하고 성적우수자 5명에 대하여는 본인 희망에 따라 시도에 배치하며 그 외에는 졸업 성적과 본인의 희망에 따라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경찰서에서의 보직관리는 보안 외근 형사 지파순으로 순환보직토록 하고 동일직위의 보직기간은 6개월로 하였다. 이 경찰간부후보생 제도는 경찰간부의 질적향상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으며 이후 한국 경찰사와 맥을 같이하게 되었다.